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문단 편집) == 줄거리 해석 == 90년대부터 꾸준히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이기 때문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삽화가 [[고증오류]]에 위화감 투성이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이 배경인 소설에서 남학생반, 여학생반이 나누어져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도 [[남녀공학]]에 [[두발자유화]]에 사복까지.] 이 작품과 그 해석에 대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이 작품을 정치적인 우화로 해석하는 경향인데, 이는 90년대에 교과서에서 채택하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된 해석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씩 해석이 달라진다. 당시에는 부당한 권력이나 독재의 종식을 이야기하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양상을 띠었다. 현재에는 폭력이 또다른 폭력에 의해서 종식당하고 새로운 폭력의 시대가 열리는 것에 대한 냉소, 그리고 주인공 병태가 향수를 느끼는 장면 등을 들어서 권력을 순응하고 동경하는 자세에 대해서 그린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문열이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을 개작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퍼졌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석대가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결말은 발표 당시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아마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영화)|영화판]]의 결말이 소설과 다른 뉘앙스로 마무리된 것이나, 또는 2005년 출간된 버전에서 또다른 결말을 작가의 말에서 함께 실어놓은 것이 결말이 개작되어 바뀌었다고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짓자면, 우선 어떤 결말이든 한병태의 태도가 찜찜하게 끝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그저 한 소시민의 씁쓸한 회상인지 혹은 권력에 대한 향수와 동경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병태는 분명 변화된 시대상에 대해서 불만족에 빠져 있으며 동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석대의 몰락과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석대의 경우도 끝이 좀 다르긴 하지만, 또 한 번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긍정과 부정을 떠나 한국의 현대사 흐름에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식자층이 느껴온 어떤 무기력과 [[회의주의]]적인 감성이 나타난다는 측면, 다른 하나로 작가 개인의 보수적인 입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측면이 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지식인]]층의 무력감은 [[리얼리즘]] 계열 작품에서는 흔하게 묘사된다. 오히려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작품들은 대체로 [[혁명가]]가 [[독재자]]로, 이념가가 현실에 매몰된 [[속물]]로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 또한 결코 무탈하게 지나오지 않은 만큼, 그 과정에서 식자층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만족은 문학 작품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이 작품에서 다루는 바는 오히려 주류적인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뚜렷한 정치적 스탠스의 문제라기보다는 식자들 사이에 만연했던 회의주의적인 자세, 현실 순응적인 자세를 여과없이 묘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 병태가 스스로의 굴종을 [[타락]]이라고 인지하고 있으며 작중 스스로의 입으로 "굴종의 단맛에 취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석대가 몰락하기가 무섭게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인 김 선생에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병태가 느끼는 아이러니는, "나는 너희들보다는 지조가 있다."라는 냉소처럼도 읽히며 "지금 [[설레발]]을 치는 너희나 나나 똑같지 않느냐? 왜 (내가 투쟁할 때) 나에게는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았느냐?"라는 비난처럼 읽히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결말부에서 병태가 "석대의 새로운 왕국이 생기고, 거기에서 예전과 같은 호사를 누리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다. (판본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다.) 위와 같은 대목들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는데, 첫째는 작중 병태는 바뀐 환경에 대해서 강한 괴리를 느끼는 캐릭터이며 항상 거기에 쫓아가지 못 하고 소외되는 인물이다. 둘째는 결말부의 병태는 보잘것없는 소시민 신분으로 각박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보다 석대는 결국 또다시 실패하고 잡혀가는 신세로 나온다. 여기서 나타나는 병태의 감정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자기 삶에 대한 자조에 가까운 것이며 당시 한국 사회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생각해 보면 [[자포자기]]에 가까운 [[망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 이후의 다른 작품들, 특히 90년대 이후에 보여준 작품활동에 대한 비판이 이 작품으로 번진 것도 고려해야 한다. 결론을 내자면,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우화라는 양식에 충실한 작품이다. 정치색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른 이문열의 작품들, 장편 [[선택(소설)|선택]], [[시인(문학)|시인]]이나 단편 〈아우와의 만남〉, 〈구로 아리랑〉, 〈달아난 악령〉 등과 달리 노골적이지 않다. 정치색에 대한 여과없는 어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후의 몇몇 작품들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러한 작풍과 비교하면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일그러진 [[영웅]]'이며 그 성장과 절정, 그리고 몰락,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어지는 '영웅의 연쇄'에 있다. 그 사이에서 쫓아가지 못 하는 사람들, 식자이든 소시민이든 그 틈바구니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마지막으로, 작품 해석과 다소 동떨어진 부분으로 서울에서 부임한 김 선생의 입장에 대한 해석에도 논란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작품 전체의 해석과는 연관된 부분은 아니다. 우선 김 선생이 석대와 마찬가지로 폭력과 정치적 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김 선생의 역할을 통해 '영웅의 연쇄'라는 순환고리가 완성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도 똑같다. 그러나 분명히 작중에서 김 선생은 또다른 폭력이며 그 증거로 병태가 초기 석대에게 느꼈던 저항감을 김 선생에게도 똑같이 느끼는 점을 보아야 할 것이다. 김 선생을 '해방자'로 해석하는 경향은 작품의 해석을 '독재타도'로 보았던 과거의 것이며 오히려 김 선생이 '해방자가 아닌 또다른 억압자'로 해석된 것이 이 작품을 재평가하게 된 계기였다. 이문열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철저하게 우화적인 구도를 가진 소품이다. 거기서 석대가 보여 주는 행태의 원관념은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는 권력이고, 그를 둘러싼 분단장급의 상위 그룹은 지식인 출신의 관료 내지 행정기술자들이다. 첫 번째 담임선생은 미국이며,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레이먼드 보너가 '독재자와의 왈츠'라 이름 붙인 미국의 6,70년대 외교 정책이다. 또, 두 번째 담임선생은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이념이며, 그가 아이들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방법은 그 폭력성에 다름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